“설움” 벗어나고픈 비교섭단체 평화당의 고육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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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 분당 뒤 ‘비교섭단체’로 언론 관심 멀어진 민주평화당
장병완 “설움이 이만저만 아냐”…조배숙 “기사가 안 나와”
12일 기자단 오찬서 ‘설움’ 토로

“간사끼리 협의하세요.”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쟁점 법안을 놓고 여야가 핏대를 세울 때마다 상임위원장이 외치는 말입니다. 이 말이 나올 때 머쓱해지는 건 ‘비교섭단체’에 소속된 상임위원들일 겁니다. 상임위원회에서 안건 심사의 일정과 방향을 결정하는 ‘간사’는 교섭단체에서만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섭단체의 간사들이 밖에서 협의하는 동안 비교섭단체 소속 의원이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림 뿐입니다.

국회는 철저하게 교섭단체 중심으로 운영됩니다. 20명의 의원을 확보해야 꾸릴 수 있는 원내 교섭단체는 국회의사당에서 이뤄지는 모든 의사활동의 기반입니다. 교섭단체의 대표나 원내대표는 회기 시작 때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대표연설에 나설 수 있습니다.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각 정당이 미는 ‘의제’를 국민에게 소개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2년마다 의원들의 상임위 배치와 위원장 선임을 결정하는 원구성 협상 테이블에도 교섭단체 원내대표단만 앉을 수 있습니다. 비교섭단체에 머무는 한 상임위원장을 낼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괜찮은 ‘선수’를 보유하고도 다른 교섭단체 원내대표들의 처분에 소속 의원들의 2년 의정활동을 맡겨야 하는 셈입니다.

“저도 3선하면서 비교섭단체는 처음이고, 조배숙 대표도 처음이잖아요. 설움이 이만저만이 아닙디다.” 12일 출입기자단 오찬에서 장병완 민주평화당(평화당) 원내대표가 한 말에선 비교섭단체 지도부의 설움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2004년 총선에서 처음 국회의원을 배출하며 원내에 진출한 뒤 쭉 비교섭단체로 달려온 진보정당과 달리, 평화당은 ‘관심 없음’과 ‘영향력 없음’이라는 이중고를 견뎌낼 면역력이 아직 충분치 않을 것 같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거대야당에서 쪼개져 나온 뒤 지난 2년여의 시간동안 의석 40석 규모의 제3당(국민의당)을 거쳐 14석 규모의 제4당 비교섭단체로 내려 앉았기 때문입니다.

평화당 소속 의원들이 아무리 “국민의당의 창당정신, 정강정책의 뼈대는 바른미래당이 아닌 우리가 모두 계승했다”고 한들, 비교섭단체로 남는 한 그 ‘정신’을 대중에게 드러낼 길이 요원한 것이 사실입니다. 기사를 쓰는 언론의 입장에서도 법안 심사의 열쇠를 쥔 교섭단체의 의견이 중요하지, 비교섭단체의 의견은 아무리 옳은 소리라고 해도 ‘구두선’에 불과하기 때문에 기사에 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조배숙 평화당 대표도 이날 기자단 오찬에서 이렇게 아쉬움을 표현했습니다. “저희가 창당 때까지 언론에서 많이 주목하시고 그랬는데, 창당되고 나니 저희도 열심히 움직이고 일선에 있는 분도 열심히 해주시는데 저녁 뉴스나 아침 조간 모니터링 해 보면 잘 안 나와요. 왜 그런가? 제가 인기가 없나? (했어요.)”장병완 원내대표은 “미움보다 더 혹독한게 무관심”이라는 말로 관심을 호소했습니다.

12일 민주평화당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조배숙 대표(사진 맨오른쪽)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김경진 최고위원, 장병완 원내대표. 사진 연합뉴스.

12일 민주평화당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조배숙 대표(사진 맨오른쪽)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김경진 최고위원, 장병완 원내대표. 사진 연합뉴스.

물론 교섭단체 지도부의 ‘배려’가 있으면 비교섭단체의 의견을 반영할 방법도 없진 않습니다. 국회에서 진행 중인 개헌 논의와 관련해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비교섭단체를 포함한 5당 원내대표의 협상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제안도 현재 비교섭단체인 평화당과 정의당이 여당과 비슷한 개혁 성향인 만큼 협상력 약화를 우려한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비토를 놓으면 재고되기 어렵습니다. 장병완 원내대표는 “아무리 서로 개인적으로 친해도, 김성태 원내대표(자유한국당)에게 전화를 10번 하고 문자를 하고 그랬는데 한번도 답이 없더라. 김동철 원내대표(바른미래당)도 그렇게 친하고 ‘술 사달라’하고 ‘형님, 형님’ 하는데 전화를 안 받아버린다”며 “비교섭단체가 이렇게 서러운 건가 처음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고 확실한 ‘대여 투쟁’을 통해 야당의 매서운 화력을 뽐내기도 애매한 처지입니다. 대부분의 정책 노선이 여당과 겹치니 비판할 명분이 적고, 호남이라는 지역기반의 개혁성을 고려하면 여당을 비판해봐야 얻을 실리도 없습니다. ‘여당과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조배숙 대표가 “잘하는 것은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잘 못하는 것은 엄중히 비판하고 견제를 해야 한다”며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나 4차산업혁명 대책에 대해선 아쉬움이 있다”고 지적하긴 했지만 “좌파 경제학자가 청와대에 앉아 패망한 소득주도 성장론을 주창하는 바람에 나라 경제는 거들(거덜)나고 청년 실업자는 거리에 넘쳐난다”(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자극적인 논평에 견주면 ‘무공해 유기농 논평’수준에 가깝습니다.

이런 고민의 반영일까요. 이날 오찬 자리에선 경제관료 출신에 점잖은 다선 의원으로선 좀처럼 보여주지 않을 파격적인 ‘호객행위’도 나왔습니다. 기획예산처 장관을 지낸 장병완 원내대표는 “저는 쭉 경제관료를 오래했지만 경제의 가장 큰 원칙이 쌀 때 사서 비쌀 때 파는 게 아니겠냐”며 “지금 민주평화당 지지율이 창당된 지 얼마 안 되고 아직 전국적 조직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여서 지금은 싸다. 지금 민주평화당주를 사놓으시면 앞으로 대박나실 거다”라고 말해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그는 “유치산업을 보호하듯, ‘유치정당’, 어린 정당, 신생정당에 많은 애정과 관심을 부탁드린다”고도 말했습니다. 대중의 무관심 속에 초라한 정당 지지율을 기록하는 상황인 만큼, 다선 의원들도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내비친 걸로 읽힙니다.

평화당이 지금 정의당과 공동 교섭단체 구성을 추진하는 것도 이 지독한 무관심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육책의 하나입니다. 17일 정의당 전국위원회의 추인 절차를 통과하면 두 당은 비교섭단체의 비애를 씻고 공동 교섭단체를 구성하기 위한 실험을 시작합니다. 출발과 지향이 다른 두 정당이 하나의 협상 주체로 나선다면 파열음은 예고돼 있습니다. 두 당의 사전 협상은 어쩌면 원내 협상보다 더 치열하고 지난할 것입니다. 2008년 자유선진당과 창조한국당이 꾸린 공동 교섭단체 ‘선진과 창조의 모임’은 1년 남짓 이어졌습니다. 평화당과 정의당이 전략적 동거에 나선다면 이는 얼마나 이어질 수 있을까요. 한 가지는 분명해 보입니다. 평화당이 ‘신생정당’의 자세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연대에 나선다면 공동 교섭단체의 실험은 승리할 것입니다. 하지만 공동 교섭단체 구성이 자리 나눠먹기를 위한 전략에 그치게 된다면 얻는 것보다 잃은 것이 많은 실험에 그칠지도 모릅니다. 평화당 주가가 장 원내대표의 말대로 ‘대박’이 날지 ‘바닥’을 칠지 여부가 이 실험에 달린 것 같습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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