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사과하지 않는다


“저한테 왜 그랬어요?”

영화 <달콤한 인생> 에서 주인공 이병헌이 목숨을 걸고 물었던 말이다. 그는 이 질문을 하기 위해 수십 명과 육박전과 총격전을 벌이고, 결국 그 대답을 듣고 숨을 거둔다. 이 질문은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많은 상처를 받은 이들이 부모에게 묻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없듯, 완벽한 부모는 없다. 차별적인 부모, 폭력적인 부모, 냉혹한 부모, 비난하는 부모…. 부모가 되고 나면 부모의 마음을 알게 된다지만, 어떤 이는 부모가 된 뒤 자기 부모를 더욱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도대체 어린 나에게 왜 그랬을까?”

그들도 두려움 속에 힘겹게 길렀으므로

어린 시절 상처를 준 부모와는 어떻게 화해할 수 있을까? 여전히 지금도 상처를 주는 부모와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까? 부모가 준 상처에 고착돼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심리의 이면엔 무엇이 있을까? 마음치유학교에서 ‘치유하는 글쓰기’를 진행하며 <한겨레> 에서 지면 상담을 해온 박미라 마음 칼럼니스트에게 물었다. 그는 “대부분의 부모가 자녀에게 준 상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걸 거부하기에 부모와의 관계에서 상처를 해결하려고 하면 오히려 상처를 더 입을 수 있다”며 “스스로 내면의 따뜻한 부모상을 회복하고 내가 나를 돌보는 내면적 작업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상처받은 것을 성인이 된 뒤 그것에 대해 따지거나 사과를 받으려는 사람이 있다. 이런 행동이 상처 치유에 도움이 되나.

어린 자녀에게 부모는 절대자이기 때문에 부모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거나 부모가 자기에게 상처를 줬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걸 극복할 내면의 힘이 없다. 성인이 되어서도 어린 자아로 남아 있는 경우 여전히 부모에게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워한다. 그래서 부모에게 항의한다는 것은 부모의 힘을 극복해보고 싶다는 내적, 무의식적 욕망이다. 내가 심리적으로 부모에게 저항할 힘이 생겼다는 걸 확인하면 독립할 힘이 생길 수 있다. 현실에선 그 욕망을 실현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자녀의 항의에 부모가 반발하고 화를 내서 관계가 오히려 악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자녀는 ‘나는 여전히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구나’ 하고 다시 확인할 위험이 있다.


부모에게 따지거나 사과를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이를 권하지는 않나.

우리가 누군가에게 따지고 싶다는 건, 아직 자신에게 내적 확신이 없다는 뜻이다. ‘내가 옳다’는 확신이 있으면, 내가 느끼는 고통을 의심하지 않으면 상대에게 따질 필요가 없다. 나는 부모에게 따지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사과를 받음으로써 자신의 고통이 정당하다는 확신을 갖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닌지 물어본다. 그래도 항의하고 싶다고 하면 소통의 목적을 환기해준다. 항의의 목적이 부모와 화해하려는 거지, 부모와 싸우려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대체 왜 그랬어요?”라고 따지면 상대는 아파하고 방어적이 되기 때문에 화해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그래서 “내가 엄마 사랑을 많이 받고 싶었고 엄마와 잘 지내고 싶은데, 이런 게 마음에 걸려서 잘 안 돼”라는 전제를 정확히 한 뒤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한다.

부모가 자녀의 호소에 자기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를 거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에서 나이 든 어머니, 아버지들은 대부분 자기성찰적이지 못하다. 자신의 행위를 돌아보지 못해 “죽도록 길러줬더니 뭐하는 소리냐”며 억울해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그동안 먹고사는 데 급급하던, 굉장히 외향화된 사회였다. 우리 부모 세대는 문제가 자신에게서 비롯됐을 수 있다거나, 알고 보면 내가 가해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성찰적으로 깨달은 사람이 많지 않은 듯하다. 게다가 부모의 내면도 어린 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런 상태로,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자식을 힘겹게 길러냈기에 자기에게서 비롯된 자식의 상처를 품어줄 여유가 없다.

자신을 성찰하지 않는 ‘독성 부모’

어떤 성인 자녀는 “부모가 사과했음에도 용서되지 않고 마음의 상처가 여전하다”고 말한다. 사과를 받아도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 자신이 자기를 용서하지 못하는 상황일 것이다. 부모의 비난과 비판적인 태도가 완전히 내면화한 것이다. 심지어 융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 내면에 선천적으로 냉혹한 부모상이 있는데 그걸 현실의 부모에게 투사해서 부모를 냉혹하다고 생각하며 고통받는 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부모의 사과에도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면 내가 나를 비난하고 야단치는 건 아닌지 내면의 목소리를 점검해야 한다. 또한 부모를 오래 미워하던 자신의 감정이 무화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도 있을 것이다. 습관이 된 분노를 청산하고 이제는 내가 나를 돌봐야 하는데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부모에게 인정욕구가 충족되지 못한 사람은 친구, 배우자, 동료 등 주변에서 끊임없이 인정욕구를 채우려는 경우가 많다.

부모 때문에 인정욕구가 결핍됐다는 생각이 인지적 착각일 수도 있다. 주변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 애쓰는 게 정말 부모의 인정을 받지 못해서인지 묻고 싶다. 성격상 타인의 인정을 받는 게 매우 중요한 사람들이 확실히 있다. 내가 여기 존재하고, 또 내가 괜찮은 사람임을 다른 사람의 반응으로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정욕구다. 그러면 ‘아, 내가 인정욕구가 강해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참 애쓰는구나. 그럼 인정받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인정욕구가 강한 자신을 한심하다고 느끼며 자신을 비하하면 수치심을 느끼곤 한다. 인정욕구 자체는 잘못된 게 아니다.

부모와의 관계가 개인의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라고 보나.

아이의 기질에 따라 다 다르다. 부모와 애착관계가 유난히 절실한 아이들이 있다. 부모의 지지가 많이 필요한 아이들은 공부도 부모랑 같이 해야 성적이 오르는 경우가 있다. 그런 아이들의 욕구는 어느 정도 들어줘야 한다. 반대로 빨리 독립하려는 아이는 그걸 지지해줘야 한다. 부모의 영향력이 일률적이진 않다.

절대적으로 관계를 끊어야 하는 ‘독성 부모’라는 표현도 있다. 어떤 스타일이 자녀에게 해악이 된다고 생각하나.

내가 생각하는 독성 부모는 자신을 성찰하지 않는 부모다. 부모 노릇도 처음엔 미숙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을 성찰하지 않고 나이 들어서도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문제다. 자식에게 계속 상처를 주며 괴롭힐 것이기 때문이다. 자식이 어른이 된 뒤에도 미숙한 부모는 자식과 화해하기 어렵다. 그러면 자식은 자신의 인생에서 부모를 완전히 잃게 된다.

여전히 성인이 된 나에게 상처를 주는(무시하거나 차별하거나 통제하거나) 부모와의 관계는 어떻게 해야 하나. 단호하게 끊어야 할까.

끊을 수 있으면 끊어야 한다. 하지만 내적 작업이 없으면 끊기 어려울 것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내적 힘을 발견하지 못하면 결코 홀로 설 수 없다.

나도 못된 걸 인정하고 관계를 끊으라

부모와 관계를 끊으려 할 때 자신이 ‘못된 자녀’인 듯한 죄책감은 어떻게 극복하나.

자신에게 못된 측면이 있다는 걸 인정하면 된다. 죄책감은 자신이 나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느끼는 감정일 수 있다. ‘나, 사실 이렇게 반성적인 사람이에요’라고 말하고 싶은 거다. 그런데 못되거나 나쁜 점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있나? 우리는 모두 이기적이고 못된 측면을 가지고 있다. 못된 측면 때문에 부모가 고통받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미안해하면 된다. 못된 측면은 자신을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상대의 간섭이나 나에 대한 월권을 거부하는 행위인 것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성격 궁합’이란 게 있는 듯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상대가 나와 맞지 않으면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고받게 된다. 선의에서 하는 말도 오해를 일으켜 상처가 된다. 그러니 못된 측면을 무조건 비난만 해서는 안 된다. 상대에겐 미안하지만 ‘그게 나야’라고 자신을 인정해야 한다.

누가 봐도 병리적인 부모 아래서 고통을 당하면서도 관계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인간은 어린 시절 경험한 문제의 상황을 성인이 되어서도 재현하려는 반복강박의 욕구를 가졌다고 한다. 내게 힘이 생겨, 과거와 같은 상황에서도 성공적으로 문제를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걸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반복강박의 예로, 알코올 문제를 가진 아버지 때문에 고통받은 자녀는 알코올 문제를 가진 배우자를 만나 그가 술을 끊고 자신과 행복하기 살기를 원한다. 고통이 너무 익숙해서, 고통 없는 상황이 너무 공허해서 문제의 관계를 반복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익숙한 고통이 고통 없는 미지의 상황보다 덜 불안하기 때문이다. 해결해야 할 심리적 문제, 현실적 문제를 외면하고 싶어 자신에게 익숙한 고통에 온통 신경을 빼앗기는 경우도 있다.

부모와 관계에서 받은 상처 때문에 평생을 헤매는 이들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될 수 있을까.

부모 때문에 상처를 입었더라도, 나이 든 부모는 성인이 된 나에 대한 영향력을 잃게 된다. 그런데 여전히 상처 때문에 괴롭다면 부모가 했던 주문을 그대로 내면화해 내가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내면의 비난하는 부모가 강력해서, 자신을 보호하고 사랑해주는 부모상을 회복하지 못한 것일 수 있다. 이 세상에서 나를 사랑하고 보호해줄 사람은 나밖에 없고, 나의 행복을 위해 애쓸 사람도 나밖에 없다. 그러면 대답은 명확해진다. 내가 내 행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부모처럼 따뜻하게 나를 돌보면서 말이다. 내 고통을 모두 부모 탓으로 돌리면 내 책임이 아니니 어떤 점에선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에서는 멀어진다. 불행한 과거를 복기하면서 부모에게 상처 입은 유약한 피해자 정체성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는 길

‘부모로부터 독립한다’는 것과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나란 존재에 대한 권리와 책임을 내가 온전히 갖는 것이다. 내가 인생의 문제를 결정하고 그 결과를 감당하고 그것에서 삶을 배워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부모에게 의존하거나 부모 탓을 하면 내 인생에서 배울 것도 발전시킬 것도 없다. 부모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립이 필요하다. 부모가 준 상처가 남아 있을지라도 나란 존재를 온전히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하는 거다. 연민으로 상처를 돌보고,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내 삶을 결정해나가는 것이다. 완전히 독립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평생 독립의 길을 가야 한다. 그래도 내 힘으로 해보고 감내하며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반복하다보면 더 온전한 독립을 할 수 있다. 그게 바로 어른이 되는 길이다.

김아리 자유기고가 ari9303@naver.com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한겨레21>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I do not have any replies, so please write first ~

한겨레21

Following 2 Follow 0

 

0 0 0